[실물점검 비교 사진]사진은 원전 설비에 사용된 베어링 실물 점검 장면 중, 정품(좌)과 비순정품(우)의 비교 모습이다. 겉보기에는 유사하지만, 내구성·진동 저항·정밀도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비순정품은 외형 각인, 표면 마감, 내륜 구성 등의 정밀성이 떨어지는 가짜 부품으로 판명됐다. 해당 비순정품은 한빛 1·2호기 설비에 납품된 것으로, 현재 전량 격리 및 수사 진행 중이다.

[데일리전남=정철원 기자] “당신에게 에너지란 무엇인가요?” 전남 영광군 홍농읍 ‘에너지팜’ 입구에 붙은 문구다. 이 물음에 지역 주민들은 말한다. “우리에겐 위험이고, 외면이고, 조작된 약속입니다.”

지난 6월 말 열린 제80차 한빛본부 소통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제출된 문건과 현장 사진을 통해, 원전 현장의 민낯이 드러났다.
보고서는 세 가지를 말했다.

‘위험이 은폐됐고, 예산은 편향됐으며, 품질은 조작됐다.’
지역지원사업비, ‘형식적 배분’과 정치적 쏠림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5년까지 한빛본부가 지역에 지원한 총 예산은 약 1조 1천억 원. 그 중 영광군 86.2%, 고창군 13.8%라는 비율은 수치로만 보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뜯어보면, 실상은 한쪽에 몰빵된 정산 구조다.

•홍농읍: 전체 예산 중 42.2% 독식
•백수면·법성면: 각 9.1%
•고창군 고창읍: 전체 중 단 4.0%
•영광읍·고창북부: 사실상 배제

이 배분 기준은 1998년 제37차 지역위원회 결정에 따른 “70:15:15” 룰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26년째 변하지 않는 비율. 주민은 바뀌고, 피해는 커졌지만, 배분 기준은 멈췄다.

방사선감시기 결선 오류… ‘설계도 오타’가 생명 좌우
한빛6호기에서 사용된 방사선감시기(RE-037)의 밸브 케이블 결선 오류는 단순한 기술 실수가 아니다.

이는 설계·납품·감독 전체 시스템이 무너진 구조적 위기다.
•도면 14건 오타 → 실제 배선 연결 오류
•감시기 117대 전수 점검 실시
•공급사: 미국 MIRON社
•종합성능시험·설계변경·소프트웨어 교체 등 ‘뒷수습’만 반복

현장 위원회에서는 “원자로 감시 체계 자체가 잘못 설계됐고, 그걸 걸러낼 시스템이 없었다”며 격앙된 목소리가 쏟아졌다.

SKF社 ‘비순정 베어링’ 납품… 무려 101개 가짜 확인
가장 충격적인 사안은 바로 가짜 부품 납품이다.
한빛본부에 납품된 SKF社 베어링 중 101개가 비순정(모조품)으로 확인됐다. 이 베어링들은 고온·고압 환경에서 작동하는 원전의 핵심 부품이다.

•NCR 발행: 12품목 101개
•1발전소 2개, 2발전소 99개
•공급사: 홍농읍 소재 특정 업체 → 수사 의뢰(4.28)
•해당 부품은 단일계약 통합 구매물자로 유입
•한수원은 “재발방지대책 수립 중”이라는 입장만 반복

“가짜 부품이 핵심 설비에 들어가고, 그걸 아무도 몰랐다는 게 더 무섭다.
”(익명의 한빛본부 전 직원)

홍보 공간인 ‘에너지팜(Energy Farm)’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에너지팜’이라는 전시행정… 그 안은 책임 회피의 회의실 회의가 열린 ‘에너지팜’ 건물 외관은 근사했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안전한 원전’이라는 안내문이 방문객을 맞았지만, 회의실 안에서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느냐”는 질책과 책임 회피가 오갔다.

사진에 찍힌 슬라이드에는 ‘설계 오류’, ‘도면 재검토’, ‘비순정 검증 결과’ 등이 빼곡히 담겨 있었지만, 책임자 사과는 없었고, 피해자 설명도 없었다.

“소통협의회가 아니라 통보협의회다.”
(한 위원은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안전은 시스템이다. 지금은 부실이 시스템이다.
한빛본부는 회의 말미에 “전사적 재발방지대책 수립”을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수년간 반복된 회의, 반복된 사고, 반복된 해명
•그리고 늘 ‘현재 논의 중’, ‘향후 적용 예정’

지금 필요한 것은 사후처리가 아니라, 사전차단 체계의 전면 개혁, 그리고 감시와 감사가 가능한 독립적 외부 시스템 구축이다.

‘에너지’는 생명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나 지금 한빛본부에서 움직이는 것은, 은폐된 기록과 뒤늦은 책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