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원전 전경 /사진:한빛원전제공

[데일리전남] 전남 영광의 한빛원자력발전소에서도 비순정 부품이 납품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전국 원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부품 비리’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지난 4일 경북 울진의 한울원전에서 시작된 의혹이 불과 20일 만에 전남 영광으로 번진 것이다.

이로써 한수원이 운영 중인 원전 두 곳에서, 같은 부품(전동기용 베어링)의 비정상적 납품 정황이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안전보다 가격을 우선시하는 조달 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 한빛원전 92개 ‘비순정 베어링’…“설치 전 보관 중” 해명에도 불신 커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5일 “이달 9~10일 한빛원전에 납품된 베어링 314개 가운데 92개가 비순정품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문제의 부품들은 전동기를 지지하고 마찰을 줄이는 ‘소모성 자재’로 분류되지만, 원전처럼 고신뢰성 설비를 요구하는 시설에선 정품 인증 여부가 핵심이다.

한수원 측은 “해당 베어링은 모두 자재 창고에 보관 중이며, 발전소에 설치되지는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불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는 불과 3주 전 한울원전에서 드러난 사건과 판박이다. 당시 한수원은 충전펌프에 설치된 전동기 베어링 일부가 비순정품으로 납품된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납품업체 2곳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한수원은 현재 전국 모든 원전에 대해 전수 점검을 진행 중이며, 발주·계약·인수검사 등 조달 체계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영광은 과거에도 ‘거래’ 거부했다”…장영진 위원장, 격한 반응

영광군의회 장영진 원전특위 위원장은 <데일리전남>과의 통화에서 “2012~2014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고, 우리는 ‘안전에는 거래가 없다’는 원칙으로 보상금조차 거부한 유일한 지역”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때 영광군만 보상금도 안 받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조달 담당자들, 쇄신 없이는 안 된다.”

장 위원장은 “외국산 부품을 가장해 국산 제품을 납품한 정황이 있다면 이는 국제적 신뢰를 해치는 ‘위조 범죄’”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군의회 차원의 감시기구와 안전협의회 회의 후, 특위를 열어 제도 개선과 법제화까지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영광은 돈 아닌 원칙 택했다”…지역 반응 거세

•“10년 전과 똑같다”
영광군은 과거 부품 비리 사건 때도 유일하게 ‘보상금 수령’을 거부한 지역이다. 장영진 위원장은 “돈을 받으면 안전과 거래한 꼴이 된다”며 주민 설득에 나섰고, 군의회는 전원 동의로 거부 입장을 정한 바 있다.

•“이번엔 반드시 법으로 막아야”
군의회는 현재 재발 방지를 위한 조례 제정과 감시 기구의 제도화를 추진 중이다. 장 위원장은 “계속 반복되는 건 시스템의 실패이자, 책임 회피”라고 강조했다.

원전 부품 비리 일지

연도 | 원전 | 사건 개요 | 대응 및 결과
2012 | 고리·신월성 | 비순정 케이블 대량 납품, 시험성적서 위조 | 관련자 구속, 원전 3기 가동 중단
2014 | 한빛 | 짝퉁 부품 납품 의혹 제기 | 영광군 “보상금 거부”, 재발 방지 약속
2025.4 | 한울 | 전동기 베어링 일부 비순정 납품 | 한수원 수사의뢰, 전수점검 착수
2025.4 | 한빛 | 베어링 314개 중 92개 비순정품 | 창고 보관 중 확인, 아직 미설치

■ 부품값 줄이려 ‘국산 위조’?…“서류상 안전은 위험하다”

이번 사건의 파장은 단순한 계약 부실을 넘어, 원전 안전에 대한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제보에 따르면, 일부 납품 업체는 외국산 정품인 것처럼 제조사 마크를 위조하거나, 스웨덴·독일산 부품으로 둔갑시킨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빛원자력안전협의회 관계자는 “이쯤 되면 ‘소모품’이라는 단어로는 감춰질 수 없는 구조적 병폐”라며 “서류상 안전, 최소비용 조달, 낮은 감시 수준이 결합된 결과”라고 말했다.


■ “이번엔 넘길 수 없다”…지역사회 움직임 본격화

현재 영광군의회 원전특위는 감시위원회 회의와 안전협의회를 준비 중이며, 조만간 특위를 소집해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제는 말이 아닌 법이 필요하다. 지역의 목소리를 헛되이 듣지 말라.”
— 장영진 영광군의회 원전특위 위원장

이번 사건은 단지 비순정 부품의 납품이라는 표면적 이슈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한 번 겪은 적 있는’ 지역에서, ‘다시는 없어야 할’ 일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원전 운영 체계 전반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