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3년 4월, 전남 영광군 주민들이 한빛원전 인근에서 열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시행령’ 설명회에 앞서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 설치를 전면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주민들은 “위조 부품, 제작 결함, 안전 무시의 한빛원전은 신뢰할 수 없다”며 임시저장시설 백지화를 촉구했다 . /사진:정철원 기자

국민 생명과 안전을 무시한 채 밀실행정으로 강행된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시행령 설명회가 지난달 31일, 전남 영광에서 주민들의 전면 반발로 결국 무산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31일 한빛원전 인근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시행령(안)’ 설명회를 추진했지만, 한빛핵발전소대응호남권공동행동과 수백 명의 지역 주민들이 강력히 항의하면서 행사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 채 철수했다.


“설명회가 아니라 요식 절차”… 주민 배제된 ‘형식적 공청회’에 분노 폭발

한빛원전 반경 5㎞ 내에는 1만 명 넘는 주민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설명회 대상은 고작 150여 명. 주민들은 “정부가 원전 옆에 고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을 설치하겠다는 중대 사안을 소수 인원으로 밀실 처리하려 한 것”이라며 “이건 설명회가 아니라 들러리 세운 기만극”이라고 성토했다.


“짝퉁 부품, 은폐 사고… 한빛원전, 신뢰 이미 끝났다”

최근 드러난 한빛원전의 각종 부실 사례도 주민 분노에 불을 질렀다.
△ 위조 SKF 베어링 사용
△ 원자로 헤드 제작 결함 은폐
△ 방사선 감시기 결선 오류 등 연이은 안전성 붕괴에도 아무런 책임도 없었던 정부가 또다시 임시저장시설을 논의하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현장에 참석한 한 주민은 “사고 터지면 쉬쉬하고, 언론 나오면 변명하는 정부를 이제 믿을 수 없다”며 “우린 핵폐기물과 거짓말 속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설명회 무산… 정부 철수, 주민은 철야 항의 돌입

주민들의 거센 저항으로 설명회는 무산됐다. 산업부 관계자들은 설명회장을 빠져나갔고, 영광군청 앞에는 항의 천막과 ‘핵폐기물 저장시설 결사반대’ 깃발이 꽂혔다.

‘한빛핵발전소대응호남권공동행동’은 즉각 성명을 내고 “이는 단순한 설명회 취소가 아닌, 정부 정책에 대한 전면적 불신을 뜻한다”고 경고했다.


시행령은 누구를 위한 법인가… ‘동의 없는 처분장’은 민주주의 파괴

정부는 지난 2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고, 3월 공포했다. 이어 8월 11일까지 주민 설명회를 진행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설명 대상인 지역 주민들은 배제되고 있다.

시행령 초안엔 △부지공모 기준 △위원회 구성 방식 △인접지역 정의 등이 담겼으나, 핵심인 ‘주민 동의 절차’, ‘거부권’, ‘투명한 정보공개’는 전무하다.

주민 없는 결정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다.
그저 또 하나의 정부 면책용 시늉 행정일 뿐이다.


“2050년까지 중간 저장 못 하면, 한빛이 ‘영구처분장’ 된다”

공동행동 측은 “시행령대로 추진될 경우, 2050년까지 중간 저장시설, 2060년까지 최종 처분장이 확보되지 않으면, 결국 한빛원전 임시저장시설이 영구처분장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지금처럼 국민의 동의 없이 밀어붙인다면, 이 핵폐기물 문제는 대한민국의 에너지정책 실패가 아니라 윤리적 파산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했다.

핵폐기물은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속의 문제다.
주민 동의 없는 고준위 폐기물 시설은 ‘설명회’로 포장된 폭력이며,
이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국가 범죄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미래 세대는 이 선택의 대가를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즉시 고준위 폐기물 정책 전면 재검토에 나서야 한다.